유일한 박사
국가, 교육, 기업, 가정 이 모든 것은 순위를 정하기가 매우 어려운 명제들이다.
그러나 나로 말하면 바로 국가—교육—기업—가정의 순위가 된다
故 유일한 박사는 기업인으로 크게 성공한 사람입니다. 동시에 근대적인 경영인으로서 특출한 업적을 남긴 분입니다. 뿐만 아니라 애국애족의 독립운동가, 선구적인 교육가, 헌신적인 사회사업가로도 후세인들로부터 추앙받고 있습니다.
1895.01.15 - 1971.03.11






















유소년기
1895 - 1915

1895
유일한 출생
1895년 아버지 유기연과 어머니 김기복 사이 6남 3녀 중 장남으로 평양에서 태어남
1904
미국 유학
대한제국 순회공사 박장현을 따라 미국 유학길에 오름. 미국 중부 네브라스카주 커니(Kearney)에 정착, 침례교 신자인 두 자매의 집에서 생활
1909
한인소년병학교 입학
박용만이 네브라스카 헤스팅스에 설립한 독립군 사관학교인 한인소년병학교 입학
1915
헤스팅스 고등학교 졸업
헤스팅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학비 마련을 위해 디토로이트 변전소에 취직
청년기
1916 - 1925

1916
미시간대학교 입학
미시간대학교 상과를 입학하여 학비를 벌기위해 중국인들을 상대로 무역업으로 아르바이트 함
1919
한인자유대회에서 결의문 낭독
필라델피아 한인자유대회에서 '한국국민의 목적과 열망을 석명(釋明)하는 결의문'의 기초작성위원으로 선임되고, 대회장에서 직접 낭독함. 미시간대학 상과 졸업
1922
라초이식품회사 설립
대학동창 스미스와 동업으로 숙주나물 통조림을 생산하는 라초이식품회사 (La Choy Food Product Inc.) 설립
장년기 1
1926 - 1942

1926
유한양행 창립
라초이 식품 회사 등 미국재산 정리, 부인 호미리와 귀국하여 '건강한 국민만이 주권을 누릴 수 있다'는 신념으로 종로2가 덕원빌딩에 유한양행 설립.
1936
법인체 주식회사 발족
법인체 주식회사로 발족하고 제1대 취체역 사장으로 취임.
1941
해외한족대회 집행위원 활동
하와이에서 열린 해외한족대회 집행위원으로 활약. 남가주대(USC)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학위 취득(MBA).
1942
미국에서의 독립운동 활동
미육군전략처(OSS) 한국담당 고문으로 활약, 이 때 노벨문학상 작가인 펄벅 여사와 교유함. LA에서 재미한인들로 무장한 맹호군 창설의 주역으로 활동.
장년기 2
1945 - 1952

1945
냅코작전에 조장으로 활동
미육군전략처(OSS)의 지하항일투쟁계획인 냅코작전(NAPKO Project)에 1조 조장으로 특수군사훈련을 받으며, 국토수복작전을 전개하려 준비했으나, 해방으로 불발. 미국 버지니아 핫 스프링에서 태평양 연안 12개국 대표가 참석해 전후문제 논의를 위해 열린 IPR총회에 한국대표로 참석.
1946
대한상공회의소 초대 회장
미국에서 8년 만에 귀국하여 회장에 취임하고 대한상공회의소 초대회장 취임.
1948
스탠퍼드 대학원 수학
스탠퍼드 대학원에서 국제법 수학.
1952
'고려공과기술학교' 설립
소사공장에 교육사업의 시작인 고려공과기술학교 설립.
노년기
1956 - 1971

1962
제약업계 최초 주식 상장
제약업계 최초로 주식을 상장.
1963
개인소유 주식 연세대와 보건장학회 기증
1963년 개인소유 주식 1만 7천주를 장학기금으로 연세대와 보건장학회에 기증
1964
유한공업고등학교 건립
학교법인 유한학원을 설립하고 영등포구 항동에 '유한공업고등학교' 건립.
1965
개인주식 5만 6천주 기부
유한교육신탁기금 관리위원회'를 발족하고 개인주식 5만 6천주를 희사하여 교육 및 장학사업 확대. 연세대로부터 명예법학박사 학위 받음
1970
현 유한재단 설립
재단법인 '한국사회 및 교육 원조신탁기금(현 유한재단)' 설립.
1971
유일한 박사 영면
유일한 박사 76세를 일기로 영면(3월 11일), 유언장을 통해 전 재산 사회 환원
상훈
1960 - 1979

1963
국가공익포장 표창
1964
우량상공인 표창
1968
동탑산업훈장 수훈
1970
국민훈장 모란장 추서
1971
국민훈장 무궁화장 추서
1991
중앙대학교에서 참경영인상 추서

유일한 정신
국가에 대한 책임
교육의 가치
기업 이익의 사회 환원
나눔의 가치를 심어 놓은 삶
유일한 박사의 삶은 생각에 머무르지 않고 실천으로 이어졌습니다. 장학사업, 교육사업지원, 사회복지, 재해구호, 봉사상 제정에 이르기까지 그의 선택은 언제나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향해 있었습니다. 이는 개인의 미덕을 넘어, 기업과 사회가 어떤 책임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하나의 기준이 되었고, 그 기준은 오늘날 유한재단의 가치와 활동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